- ■ 강원영화학교_원주 신청 안내 - ■ 별그린x모두 자동차극장 신청 안내(마감)
 
관람 안내
상영시간표
현재 상영작
상영 예정작
지난 상영작
상영 후기
<영화로운 생활> 후기
모두레터

 
Home : 상영 : 모두레터
 
제목 [🌼모두레터 Vol.05] <공포의 이중인간> 호흡만으로 부족한 우리 상영담당자  |  2020.07.30  |  조회 27

호흡만으로 부족한 우리
이용민 <공포의 이중인간>(1974)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살기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엔 너무 이르다).
올해를 수식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봄꽃보다 바이러스가 더 일찍 피어난 2020년. 우리와 반년을 공생한 바이러스는 ‘개인’에서 ‘인류’로 죽음의 공포를 격상시켰다. 삶의 질에 방점을 찍던 우리의 가치관은 어느새 코앞의 죽음만이라도 피하려는 원초적인 방향으로 퇴행해야만 했다.

시기를 증명하듯, 올여름 개봉한(그리고 개봉할) 영화는 더욱 생존에 집착하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좀비, 심해, 초능력자, 우주 침공 등 처한 위기는 다양하나 주인공의 과제는 단 하나, 살아남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존이란 남과 구분되는 온전히 자기(self)로서 기능하는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죽지 않았으나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떠한가. 이 또한 생존으로 볼 수 있을까. 심오하면서도 발칙한 상상은 40여 년 전, 이미 스크린에서 구현되었다.

세찬 비바람이 부는 밤, 어느 정신병원의 연구실에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려는 실험이 한창이다. 소생의 원리는 간단하다. 죽은 사람의 몸에 죽기 직전인 사람의 영혼을 옮겨 넣는 것. 여러 시도 끝에 결국 실험은 성공한다. 그러나 깨어난 이는 몸은 여자이나 영혼은 남자인 이중 인간이 되어버렸다.

<공포의 이중인간>(1974)을 연출한 이용민 감독은 한국 공포영화사(史)에서 거론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70년대는 한국 공포 영화의 침체기였다. TV가 보급되고 유신정권의 검열과 억압이 지배적이었다. 1960년대의 흥행 코드, 이른바 하얀 소복, 여자 귀신, 억울한 죽음(恨), 공동묘지 등의 소재가 답습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공포의 이중인간>은 기구한 사연이나 혼령, 내세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죽은 이를 소생시키고자 다른 이의 영혼을 이용하지만, 샤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 정박사가 특별히 고안해낸 전류 장치를 통해 영혼이 추출된다. 죽어가는 이의 눈에서 초록빛 뭉치가 빠져나오는 장면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돋보인다. 사람의 눈을 품은 그것은 마치 혼불(사람의 혼을 이루고 있다는 푸른빛)처럼 보인다. 촬영 감독 출신인 연출자의 저력이 느껴지는 귀한 장면이다. 이 특수 효과 덕분인지 몰라도 작품에서 SF 영화의 면모도 느낄 수 있다.


첫 실험의 성공 이후 정박사는 조수를 데리고 오대산을 간다. 30년 전에 묻힌 시체, 일본군 오노를 파내기 위함이다. 당시 오노는 중국에서 대량의 다이아몬드를 갈취하였는데 함께 복역했던 정박사는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보물의 행방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오노를 되살리고자 평생 실험에 매달린 만큼 그는 뼛속 깊이 속물적인 인간이다. 간악한 실험의 진짜 의도를 숨긴 정박사, 이유를 불문하고 실험 결과만 노리다 진실을 알게 되자 다이아몬드까지 눈독 들이는 조수들, 이들에게 도덕성이란 있을 수 없다. 실험의 성공을 위해 이들은 여러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다. 지하 창고엔 실험에 사용된 시체가 짐짝처럼 쌓여 방치되었다. 불신과 배신으로 점철된 이들이 서로의 본심은 교묘히 숨긴 채 합의된 공통 목표(실험 성공)를 향해 달려가는 그 자체가 공포다.

소생 실험의 첫 성공으로 깨어난 사람은 분노로 가득하다. 다시 호흡하기 시작하였으나 원래 자기의 몸이 아닌 다른 이의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의 기억과 혼재된 이중적인 삶을 부여받았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가 보다.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부활이 행복할 리 없다. 결국 그(그녀)는 파국을 선택한다.

생존, 살아있다는 것은 절대적이면서 동시에 상대적이다. 호흡은 생존의 최소 조건일 뿐, 전부는 아니다. 호흡만으로 만족하기엔 사람은 너무도 욕망 덩어리다. 언제 끝날지 모를 감염의 공포 속에 개봉한 영화도 보고, 지인과 카페도 가야 한다. 이런 사소한 순간의 축적이야말로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자 진짜 살아있다고 느낀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추동된다. 영생을 보장받은 존재는 결코 이 역동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효정(원주옥상영화제 기획단)
  ▷ 의견 목록 (총0개)
 
아이콘
Selected Icon
목록
이전 [🌼모두레터 Vol.06] <커피와 담배> 일상을 예술로 전환하는..
다음 [🌼모두레터 Vol.04] <우중산책> 정자로서의 삶
 
센터소개미디어교육영화상영장비대여시설대관창작지원원주영상미디어센터 찾아오시는길 다른 미디어센터 바로가기 링크  
센터로고-메인페이지 바로가기 센터정보-원주영상미디어센터 대표자 : 장승완    고유번호증: 224-82-62030 (26417) 강원도 원주시 원일로 139 (일산동 211) 4층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전화번호: 033) 733-8020    팩스: 033) 733-8111    이메일: wonjumc@wonjumc.kr Copyright(C) 원주영상미디어센터 All Rights Reserved 협력기관 배너-원주시,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