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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레터 Vol.03] <피아니스트의 전설> 유한한 건반 안에서 무한을 꿈꾼 노베첸토 상영담당자  |  2020.07.30  |  조회 61

유한한 건반 안에서 무한을 꿈꾼 노베첸토

쥬세페 토르나토레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이탈리아 소설가이자 음악학자인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모놀로그 <피아니스트 노베첸토>를 원작으로 <시네마천국>의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리오 모리꼬네가 1998년에 제작한 것을 지난 1월에 재개봉한 영화다.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배위에서 태어난 노베첸토는 ‘1900년’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다. 제국주의와 자유무역, 민주주의라는 화두로 시작된 20세기가 버지니아호에서 시작되고 소멸되는데 이 영화가 20세기적 가치가 힘을 다한 2020년에 재개봉된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유하는 도시 버지니아호의 일등석 그랜드피아노 위에 버려진 천재피아니스트 노베첸토는 한번에 2천여 명이 자신의 연주를 거쳐가지만 정작 그는 뭍에 내려본 적도 국적도 생일도 없는 진정한 자유인이자 세상을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음악영화답게 1920년대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호에서 펼쳐지는 재즈와 춤곡들의 향연, 높은 파도가 휘몰아치는 밤 음악으로 친구가 된 두 남자가 피아노의 고정장치를 풀고 미끄러지듯 선내를 유영하며 피아노연주를 하는 장면 등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뉴올리언즈 출신 재즈음악가 젤리 롤 모튼과의 피아노 배틀. 젤리에게는 승부가 중요했겠지만 노베첸토에겐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음악과 조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평소 규칙을 어기고 변주하거나 우아한 왈츠를 연주하다 예고없이 경쾌하고 발랄한 재즈로 넘어가기도 했던 그는 정해진 틀이나 규칙이 아니라 장소와 소리, 냄새로 세상을 읽고 마음을 음(音)에 새겨넣는 사람이다. 가난한 이민자들의 음악인 재즈를 창시했다고 주장하는 젤리 롤 모튼조차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두고 배틀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임을 알아챈 노베첸토는 모두의 말을 잊게 만든 환상적인 테크닉을 보여줌으로써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을 왜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가 하선할 때 “재즈도 꺼지라”고 말하는 노베첸토에게 음악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 도와 다른 상상의 세계로 빠질 수 있게 하는, 그저 88개의 건반 속에서 무한하게 유영하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세계일뿐이다.

이 영화에는 버지니아호가 대서양을 횡단한 끝에 맨해튼 남쪽 리버티섬의 여신상이 안개를 뚫고 보일 때쯤 누군가 아메리카--!!하고 외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기회의 땅 뉴욕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모든 사람들이 환호작약하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장면은 야누스의 얼굴을 한 20세기의 예고편인 동시에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 노베첸토의 공허한 시선이 잔상으로 남는다.

노베첸토가 태어난 1900년부터 20년 동안 2천만 명이 넘는 유럽 이민자들, 즉 영국인들과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인, 카톨릭을 신봉하는 이탈리아와 남부유럽인, 대기근에서 살아남은 아일랜드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기회의 땅으로 떠났다. 그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상징적인 의미는 한손에는 독립선언서, 한손에는 횃불을 들고 세계를 밝히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그러나 앵글로색슨족이 아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유럽인들과 카톨릭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차별과 억압의 땅일 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일 뿐임을 노베첸토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유일한 벗인 트럼펫 연주자 맥스는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한걸음을 권유하지만 정작 그가 뉴욕에 발을 딛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육지에서만이 “바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선트랩에 멈춰서서 마천루로 가득한 뉴욕을 바라보던 그는 끝내 상륙을 거부한다. 그리고 시작과 끝이 있는 건반 안에서는 무한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끝이 없는 세상은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며, 무한한 건반은 오직 신만이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베첸토가 자신은 도저히 할 수 없다 했던 수천 개의 길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다. 희망을 품고 자유와 인권의 나라 아메리카를 찾아 뉴욕항에 내렸던 수천만 명의 이민자들은 20세기의 감수성으로 한 시대를 보냈다. 미국은 지난 세기 패권적인 외교정책의 대가로 2001년 뉴욕과 워싱턴이 공격받았고 2010년까지 10년간 무려 1조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했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 미국은 불과 1백여년 만에 이민자들을 멸시하는 대통령을 선출했고, 후진적인 코로나 대응전략으로 뉴욕항에는 항공모함에 비견되는 병원선이 정박해 있으며, 뉴욕은 오후 8시 통금과 폭력시위, 약탈과 무력진압으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이는 세계의 표준이 된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비방식, 그리고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로 대변되던 미국의 가치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노베첸토의 말은 틀렸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무한한 길이어서 두렵다고 했지만 이방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심지어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버지니아호가 수명을 다하고 폭파되기 직전 텅빈 선내에 울려퍼지는 피아노와 트럼펫 소리는 숱한 시간과 이야기를 품은 공간을 어루만지고 어디서든 그저 피아노연주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노베첸토의 삶을 영원한 것으로 만든다. 노베첸토가 하선계단에 멈춰선 것처럼 우리도 코로나라는 불청객을 맞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막막한 현실에 놓여있다.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21세기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88개의 건반과도 같이 유한한 세계를 무한하게 상상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단 하나의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노베첸토가 레코딩하는 도중 창밖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즉흥적으로 'Playing love'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사랑, 그것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므로. 그리고 여전히 남는 숙제는 노베첸토가 우리에게 던져준 질문인 그 많은 자유를 감당할, 즉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에 대답하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한마디인 노베첸토를 키워준 화부 대니가 한 말 “망할 놈의 규칙!”,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 아닐까.

              강미숙(소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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