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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레터 Vol.07] <제 3의 사나이> 도덕은 선과 악, 혹은 흑백으로 나눌 수 있는가 상영담당자  |  2020.08.20  |  조회 20

도덕은 선과 악, 혹은 흑백으로 나눌 수 있는가

캐롤 리드 <제 3의 사나이>(1949)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이 죄를 지으면, 선량한 시민인 줄 알았던 죽마고우가 악한이라면 응징할 것인가. 인간사를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가.
요즘 일련의 세상사를 지켜보며 떠오른 영화, <제 3의 사나이> -(1949년 作)를 다시보며 드는 생각이다. 고전은 인류가 직면한 보편적인 질문에 대해 천착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영국 고전 스릴러의 대표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영화 <제3의 사나이>는 영화사적으로나 주제의식에 있어서나 영원한 고전이라 할 만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연합군의 공동관리 하에 있는 도시 비엔나에서 가짜 페니실린을 밀매한 혐의로 추적을 받던 남자(해리 라임)가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는 데 성공하지만 일자리를 주선하겠다고 초대한 미국의 3류 소설가인 친구(홀리 마텐즈)의 응징으로 결국 죽음을 맞는다는 간단한 플롯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해리 라임이 던지는 화두에 있다. 해리 라임으로 분한 배우 오손 웰스는 몇 장면 등장하지 않지만 극중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는데 특히 두 사람이 대관람차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플롯을 압도할 만큼 강렬하다.

“30년간 보르지아의 압제하에 전쟁, 테러, 살인과 같은 암울한 시대를 보낸 이탈리아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지. 스위스는 5백년 간 민주주의를 꽃피웠지만 남은 건 뻐꾸기 시계 뿐이야.” 그리곤 대관람차 밑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동작을 멈추는 점 한 개당 2만 파운드씩 벌 수 있다면, 소득세도 없는 돈을 벌 수 있다면 정말 갖지 않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전쟁이 지나간 자리를 대신한 자본의 논리 앞에 위태롭게 서있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도덕관을 비웃는다.

물론 스위스가 지난 5백년간 민주주의를 꽃피웠다거나 뻐꾸기 시계는 독일의 발명이라거나 보르지아 치하에만 전쟁과 살육이 자행된 건 아니라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시대나 조금씩 얼굴을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는 같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이 내건 낭트칙령의 약속을 깬 앙리 4세에 쫓겨 스위스에 정착한 프랑스 개신교도들이 스위스를 오늘날까지 일본이나 미국 버금가는 탄탄한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굳이 항변할 필요를 못 느낀다. 어쩌면 세상은 다소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더 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주제의식에서 살짝 벗어나면 70년 전 영화가 맞나 싶게 영화보기의 즐거움이 쏠쏠하다. 흑백영화가 선사하는 빛의 영상미가 돋보이는데다 만돌린이나 기타의 중간쯤인 것 같은 치터(Zither, 오스트리아 민속현악기)의 애잔하면서도 경쾌하고, 구슬프면서도 긴박감 넘치는 연주가 그 기묘함을 더해준다. 주로 우울한 도시인의 초상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황량한 극 분위기는 종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의 이모저모를 통해 전후 인류가 처한 절망감과 혼돈을 그대로 전해준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유행했던 표현주의 영향의 흔적일까. 왜곡과 과장이라는 뒤틀림을 바탕으로 흑백영화답게 명암의 대비로 극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긴장감 속에 유쾌하게 혹은 불길하게 과장된 그림자, 지면과 평형을 이루지 않음으로서 불안과 긴장을 극대화하는 카메라 각도 등 스릴러이면서도 심리극에 가까운 영화의 효과를 더해준다. 특히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의 추격전을 떠오르게 하는 하수관에서의 추격전이나 전쟁복구가 한창인 비엔나 이곳저곳의 그로테스크한 거리 풍경을 통해 비엔나의 어제를 보는 재미도 있다.

양대 대전으로 도덕은 상실되고 철저하게 파괴된 인류의 유산 앞에 선과 악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에서 그래도 백미는 롱테이크 엔딩 장면이다. 해리의 진짜 장례식을 치른 후 긴 가로수 길 끝에서 안나를 기다리는 홀리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가는 안나, 그리고 홀리가 빼어무는 담배 한 가치. 도덕은 어쩌면 규정하려 할수록 사랑을 잃고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안나의 쓸쓸함이거나 보이는 순간 공중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당사자를 넘어 제3자의 위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오늘,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과연 정의는, 도덕은, 공정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인지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제3의 사나이’가 되어줘야 할 것 같다.

강미숙(소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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