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영상미디어센터 2021 커뮤니티 워크샵 <프로젝.. - 2021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커뮤니티 지원사업 사업설..
 
관람 안내
상영시간표
현재 상영작
상영 예정작
지난 상영작
상영 후기
<영화로운 생활> 후기
모두레터

 
Home : 상영 : 모두레터
 
제목 [🌼모두레터 Vol.23] <로마> 삶을 지배하는 유년의 기억 상영담당자  |  2021.03.25  |  조회 25

삶을 지배하는 유년의 기억
알폰소 쿠아론  <로마>(2010)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입주 가사도우미로 취직했다. 간혹 고용주 부부가 몹시 다투기라도 하는 날엔 괜히 불똥이 튀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었다. 덜컥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는. 불행히도 연인은 뜻밖의 잉태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제 이 아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가끔씩 공연히 불안해지곤 하는데, 견딜 수 없을 때면 애꿎은 가사도우미에게 화풀이를 해댄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을 갔던 남편이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딴 살림을 차린 게 분명하다. 수소문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결론은 이혼이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사돈의 팔촌으로부터 구전되는 도시전설 마냥 친숙한 두 이야기의 출처는 의외로 대한민국이 아닌 멕시코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18 년 작 <로마>는 민주화의 격랑이 소용돌이치던 1970년대, 멕시코시티 인근 ‘로마’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제86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까지 연거푸 거머쥐며 알폰소 쿠아론은 <로마>를 통해 다시 한 번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유년은 일생을 지배한다. 어린 시절 목격한 광경들은 어떤 형태로든 각인되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식사자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되도록 동석한 모든 사람의 앞에 수저를 놓는다. 무조건반사에 가까운 이 행동은 우리집 밥상머리 교육에 기인한다. 어려서부터 식탁이 차려질 때 가족들 수저세팅은 늘 내 몫이었다. 딱히 집안의 막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일종의 의례였다. ‘밥 먹자. 진영이 수저 놓고.’라는 부모님의 정언명령은 그렇게 평생 안고 가야 할 의무가 되었다.

뜬금없이 수저 이야기를 하는 건 <로마>가 감독의 유년 시절을 복기하는 자전영화이기 때문이다. 알폰소 쿠아론은 <로마>를 ‘추구하고자하는 바를 진정으로 담아낸 최초의 작품’이라 일컬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등 그동안 세상에 선보인 수많은 영화들을 뒤로 하고 그가 <로마>를 본인의 역작으로 손꼽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거품 섞인 구정물이 타일 바닥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물기어린 바닥에 청명한 하늘이 반사되며 언뜻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입주 가사도우미 클레오의 반복되는 업무일 뿐이다. 가족들이 키우는 덩치 큰 강아지가 굵직한 똥을 여기저기 싸는 통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복도 바닥을 샅샅이 닦아내는 일을 포함해 매일의 식사와 빨래에 이르는 모든 가사노동이 클레오의 차지다. 생활과 자원, 시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가족이나 다름없지만 엄연히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신분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집 주인인 소피아와 그의 남편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시간에도 클레오는 홀로 분주하다. 영화는 멕시코 원주민 가사 도우미와 백인 고용주의 차별적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관객을 조금씩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로마>는 과거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재현할 뿐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설명에 의하면 배관공사를 하듯, 담으려는 순간을 먼저 정한 뒤 그로부터 전체 이야기를 점차 구성해나가는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졌다고 한다. 촬영 전 작성된 대본조차 없었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는 작은 소품까지 완벽하게 갖춰놓은 세트에서 멕시코시티의 50여 년 전 모습을 되도록 고스란히 흑백 화면 속에 펼쳐놓았다.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담고자 노력했다는 감독의 집요함은 내용이 전개될수록 빛을 발한다.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되도록 가치판단을 보류하고 인물 간의 연결성을 쫓다보면 자연스럽게 1970년대 멕시코시티 한복판에 도착한다. 주인공인 클레오부터 잠깐 스치는 단역에 이르기까지 <로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배우들이 연기를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 또한 재미난 관전 포인트다.


클레오의 실제 모델은 알폰소 쿠아론의 유모였던 ‘리보’라는 여성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홀연히 등장하는 ‘리보에게 (Para libo)’라는 자막이 무척 뭉클하다. 리보뿐만 아니라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을 길러낸 세 명의 여성들(어머니, 리보, 할머니)에게 헌정하는 영화다. 클레오가 임신 사실을 고백하며 행여 해고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자, ‘병원에는 가보았느냐’며 소피아가 다독이는 장면은 감독의 생애를 지배하는 유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평행이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로마>는 우리나라의 지난 세월과 많이 닮았다. 특히 클레오의 못난 (전)연인 페르민이 봉두난발로 민주화 시위대를 추격하는 모습은 어쩐지 백골단을 연상케 한다. 같은 맥락에서 페르민이 한국인 조교로부터 무술을 배우는 씬 또한 상당히 흥미롭다. 격발하는 총성과 비명, 자욱한 연기 속에서 맞이하는 클레오의 비극은 그래서 도무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로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두렵더라도 서로를 의지하며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물놀이를 하다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클레오가 구조한 뒤, 한 몸처럼 서로 포옹하는 장면은 전작 <그래비티>와도 교묘히 중첩된다. 천신만고 끝에 지구에 돌아온 라이언 스톤 박사가 중력에 짓눌려가며 바다 밖으로 빠져나와 새 삶을 맞이함과 같이 소피아와 클레오 또한 잔인한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다시 태어난다. 구정물이 넘실거리는 <로마>의 오프닝 시퀀스가 아름다워 보인 까닭은 아마도 더러운 무언가를 씻어낸다는 행위가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에게 있어 유년시절 경험했던 리보, 어머니, 할머니의 연대는 단순한 추억이 아님이 분명하다.
<로마>가 말하려는 진실은 평범하지만 위대하다. 밥상에 수저를 놓는 일처럼, 사소한 순간들을 끝없이 반복하며 인생은 완성된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참을 수 없이 시시한 삶을 나 또한 기꺼이 받아들이련다. 지구 반대편에서 오래 전 클레오와 소피아가 그랬듯이.

황진영
  ▷ 의견 목록 (총0개)
 
아이콘
Selected Icon
목록
이전 [🌼모두레터 Vol.24] <사마에게> 전쟁과 일상, 인간의 존엄
다음 [🌼모두레터 Vol.22] <핑크 사리> 인권? 여성인권?
 
센터소개미디어교육영화상영장비대여시설대관창작지원원주영상미디어센터 찾아오시는길 다른 미디어센터 바로가기 링크  
센터로고-메인페이지 바로가기 센터정보-원주영상미디어센터 대표자 : 장승완    고유번호증: 224-82-62030 (26417) 강원도 원주시 원일로 139 (일산동 211) 4층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전화번호: 033) 733-8020    팩스: 033) 733-8111    이메일: wonjumc@wonjumc.kr Copyright(C) 원주영상미디어센터 All Rights Reserved 협력기관 배너-원주시,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