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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레터 Vol.21] <미나리> 당신 곁의 원더'풀' 상영담당자  |  2021.03.10  |  조회 49

당신 곁의 원더'풀'
정이삭 <미나리> (2021)

아빠가 나에게 사은품을 건넸다. 열어보니 프라이팬이다.
“이걸 왜 나한테 줘?”
“너 혼자 살면 필요하잖아.”
생애 첫 독립을 하려고 한다. 말은 거창하나 실은 언제 나갈지 나도 모른다. 선언만 했을 뿐인데 아빠는 벌써 자기만의 방식으로 딸을 떠나보낼 요란한 준비를 한다.  이를테면 쌀 20kg 한 포대를 사러 나가서는 10kg씩 두 포대를 사 온다.  의문에 돌아오는 답은 늘 비슷하다.
“너 나가 살면 필요하잖아.”
<미나리>의 순자가 떠올랐다. 딸과 손자를 보러 고춧가루에 삶은 밤, 화투까지 바리바리 챙겨 미국까지 날아온 순자. 그녀의 짐 꾸러미에 울컥하는 딸, 모니카처럼 나도 혼자서 쌀을 씻을 때마다, 팬을 꺼낼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려나.
봄철 개울가에서 자라는 '미나리'가 이번엔 스크린에 자리를 잡았다. 국내보다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여파는 엄청났다. 미나리의 효능에 반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매일 보도되는 해외 영화제의 수상 행렬, 연이은 관심은 작년 이맘때 영화계를 뒤집은 <기생충>을 연상케 했다.

1970~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1세대의 정착기를 그린 <미나리>는 재미 교포 2세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정했다. 보는 내내 여러 핑계를 대며 한쪽으로 치워 놓았던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봄의 태동을 알리는 3월의 햇볕을 머금은 장면들을 보니 더 뭉클했다. 최근 작품의 원산지(?)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조금은 이해된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재료는 국산인데 레시피는 국산이 아닌 듯한 느낌이니까.


최근 해외에서 주목하는 국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른바 ‘한국식 매운맛’에 특화되어 있다. 빠질 수 없는 재료로서 문제 있는 인물(괴물 포함)이 대거 등장한다. 서로 처한 여건과 역량, 가치관까지 모두 다르다. 철저히 다른 인물들이 빠르게 충돌할 때 이야기는 짜릿해지고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개성 강한 이들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낼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비(非)정형성’에 관객은 중독된다. 극적인 설정과 화려한 문제 해결. 여기에 한국 고유의 감성을 첨가하면 K-Culture의 좋은 예가 된다. 이 논리라면 <미나리>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양한 지점에서 기록을 세우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하나.
우리는 지금 ‘맛’의 프레임으로 가둘 수 없는 작품을 보고 있다.

집요함을 버린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115분을 지탱하는 힘은 적당한 거리감에 있다. 영화는 낯선 땅에 정착하려는 가족의 고군분투, 그 자체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아메리칸 드림을 먼저 이룩한 다른 한인 가족이 등장하지도 않고, 인종차별과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저 비옥한 토양에 자리를 잡고, 물길을 찾아 한국 작물을 심고, 약간의 기도를 보태 햇볕과 바람에 맡길 뿐이다.

감독의 어린 시절을 대변하는 특정 화자가 없는 점도 인상적이다. 덕분에 관객은 저마다 자신이 투영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인물과 동일시하면서 한인 가족의 삶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곧 결혼을 앞둔 친구, 은퇴 후 채용공고를 뒤적이는 엄마, 이직을 고민하는 동생, 처음 엄마가 된 선배, 모두 각자의 아메리칸 드림이 생각날 것이다. 고향을 등지고 미국 아칸소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는 그들에게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내가 보였다. 내 삶에 견주어 나는 제이콥과 모니카가 되었다. 데이비드를 거쳐 가족을 지켜보는 주변인 폴이 되기도 했다. 딱 한 명만 빼고.


나는 아직 순자와 동일시할 수 있는 그릇이 되지는 못했다. 제이콥 가족은 저마다 고독하다. 이들을 만나러 미국 바보들은 알지도 못하는 미나리 씨를 들고 순자가 왔다. 다른 미국 할머니들과 달리 순자는 쿠키도 못 만들고, 한국 냄새가 난다. 그런 그녀가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가족들에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편, 삶의 굴곡은 계속된다. 궁핍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애써 키운 작물이 불타버린다. 아무것도 없는 아칸소에 처음 왔던 때가 재연된다.
다시 새로운 물길을 찾는 부부에게서 비극보다 희망을 본 건 왜일까. 언제든 뽑아 먹을 수 있는 미나리를 심은 순자. 늘 가족의 곁에 있을 그녀의 분신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세계가 무기력을 경험한 지 어느새 2년 차다. 이 시기에 만난 <미나리>는 마치 또 다른 백신 같다. 작품의 빛나는 행보는 바이러스의 종식 후 새로운 일상을 바라는 세계인의 마음이 투영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사라질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언제쯤 사라질지 모르는 더 지독한 문제들도 차고 넘친다. 한 달에 이백만 원을 벌어 모조리 저축한다 치자. 10년을 꼬박 모아도 내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시대는 어떤 백신을 맞아야 하나. 이 와중에 절반도 못 벌면서 독립을 하려는 내가 있다.
“애들도 아빠가 뭔가 해내는 모습을 봐야 할 거 아냐.”
지칭 대상만 바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이콥이 했다. 나에게 미국이자 아칸소가 될 새 보금자리를 상상해본다. 부적 삼아 볕을 등진 곳에 화분을 놓고 미나리를 심어볼까. 원산지 표기가 뭣이 중한가. 국에 넣어도 맛있고, 아프면 약으로도 쓰는 그 자체가 원더‘풀’인걸.

이효정(원주옥상영화제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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