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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레터 Vol.18] 나는 누구인가 <헤로니모> 상영담당자  |  2021.02.10  |  조회 73


나는 누구인가
전후석 <헤로니모>(2019)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궁극으로 찾고자 하는 질문이고 생의 이유가 될 것이다. 땅에 뿌리내린 나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법이 없지만 화분에 옮겨지거나 다른 땅으로 옮겨진 나무는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뿌리가 기억하는 정체성에 천착한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말은 곧 자신의 고유성을 지운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정체성은 곧 인간이 가진 고유한 무늬이고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빛이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였던 구한말, 7천여명의 조선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났다. 그중 1,033명의 조선인들은 열심히 일만하면 잘살 수 있다는 황성신문의 광고를 보고 1905년 40여일의 지옥같은 여정 끝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이주했지만 듣던 것과는 달리 4년간의 노예계약으로 애니깽 농장에 팔려갔다. 로프와 카페트의 재료가 되는 애니깽(에네켄)이란 선인장은 가시에 독이 있어 찔리면 치명적이라 다들 기피하는 곳이었고 조선인들은 이곳에서 노예보다 더한 삶을 살았다. 1909년 노예계약은 끝났지만 조선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결국 일본국적자 신분으로 일부는 멕시코에 남고 일부는 1921년 쿠바로 재이주했으니 아메리카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발점이다.

19세기 말 동아시아에 국한되어 있던 해외이주는 20세기 들어 전 세계로 확장된다. 오늘날 재외동포는 남북한 인구의 20%에 육박, 유태인과 더불어 인구밀도로는 두번째로 많은 나라다. 그러나 유태인과는 달리 재외동포 자녀들의 뿌리를 찾는 정체성 교육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미국계 한국인 변호사 전후석씨는 오바마가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2015년 쿠바여행에서 1905년 유카탄 반도를 거쳐 쿠바로 이주한 한인의 후손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그는 아바나 법대 동기였던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한 헤로니모 임(임은조,1926-2006)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카메라를 들고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를 기록하겠다는 전후석 감독의 무모하기까지 한 도전은 곧 목마른 자가 우물의 근원을 찾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헤로니모 임의 아버지 임천택은 쿠바로 함께 이주한 한인들을 결속시키며 노예노동의 대가로 일제치하 조국의 독립자금을 댔던 독립운동가였지만 해방 후 조국이 양분되면서 돌아갈 조국을 영영 잃고 쿠바에서의 삶을 받아들인다. 헤로니모는 대학에 들어간 최초의 한인이었으며 쿠바혁명 이후 체게바라가 산업부 장관이던 시절부터 산업부 차관보까지 30년간 고위공직자로 일하며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헌신했다. 평생 쿠바인으로 살았지만 일생에 남은 일은 후손들에게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일이었던 것. 전후석 감독은 헤로니모의 자녀들과 끈질긴 한인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그의 여정을 톺아가며 동시에 자신을 찾아간다.

“디아스포라의 핵심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의 열매는 혁신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쿠바에서 태어난 헤로니모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쿠바 한인 1세대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1921년 한인이 처음 도착한 쿠바 마니티에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현실에 굴종하지 않고 쿠바인이자 한인으로서 자존을 지키며 살았던 한인들을 영원한 현재형으로 만들었다.

헤로니모 임의 아내와 형제, 자녀들은 그는 죽을 때까지 맑스주의자이자 혁명가였다고도 말하고 미국의 오랜 경제제재로 극심한 물자빈곤을 겪으며 사회주의에 사상적 회의를 품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희망을 담은 그릇일 뿐, 그가 추구한 것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쿠바한인의 정체성이란 화두뿐이었으리라. 

“애국심은 이기적인 민족주의를 따르지 않는다. 애국심은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착취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희생과 눈물과 합쳐져야 한다... 조국은 조국을 가진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자격이자 존엄이다.” 그가 자녀들에게 남긴 말처럼 그는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증명해 보였다. 그의 가르침대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제대로 된 인간의 의무”이지 않은가. 

강미숙(소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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