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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레터 Vol.11] 스퀘어의 자유, 그리고 공유할 권리 <더 스퀘어(The Square) 상영담당자  |  2020.10.08  |  조회 12

스퀘어의 자유, 그리고 공유할 권리
루벤 외스틀룬드 <더 스퀘어(The Square)>

마치 1제곱미터의 스퀘어 안에 내 몸을 욱여넣고 러닝타임 내내 금도 밟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영화보는 내내 느낀 불편함은 엔딩이 올라간 후에는 아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이토록 불편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아마도 정치적 올바름이란 일상 그 자체임을 말하고자 한 감독의 의도이리라. 지구상 최대 복지국가 스웨덴의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이 <더 스퀘어> 전시를 앞두고 겪는 일련의 에피소드는 길거리의 난민과 구걸하는 빈민들, 이주자 아파트에 사는 소년, 노숙인, 전시보다 뷔페에 관심이 더 많은 관객들, 이주노동자, 뚜렛 증후군이 있는 남성 등등 각각이 가진 서사와 만나 다기다양한 불편함을 직조해낸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영역입니다. 그 경계 안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나눠 갖습니다.” 미술관 광장에 그려질 프로젝트 ‘더 스퀘어’의 기획의도다. 횡단보도가 보행자와 운전자의 계약관계를 나타내듯 스퀘어도 신뢰와 돌봄의 약속이자 계약이다.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동참해달라는 캠페인이 벌어지는 광장과 역 앞에서 구걸하는 이민자 여성과 장애인의 스퀘어는 만나지 못한다. 주인공 크리스티안은 출근길 광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는 진보적 문화예술인이며 종종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말하지만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이민자 아파트의 가가호호마다 협박편지를 넣는다.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주민을 무시하고 자신의 편지로 억울한 누명을 쓴 소년의 사과요구를 외면하며 흐트러진 설치미술 작품을 슬쩍 수정한다. 전시를 취재하러 온 여기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노숙인이 햄버거를 구걸하는 것까지는 친절을 베풀지만 양파를 빼고 달라는 요구는 거칠게 햄버거를 던지는 것으로 불쾌함을 드러낸다. 그가 보여주는 이중성과 가진 자의 위선은 인간 본성의 나약함과 개인이 옳다고 믿는 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과의 간극을 보여준다.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하지만 이주자아파트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로 다투면서 “너는 일반인이니까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나 시선 따위가 사실은 가장 진실한 법이다. 큐레이터의 일상을 통해 보여주는 차별 혹은 그림자 취급하는 무관심과 위선은 인간의 저열한 본성을 들킨 민낯들이지만 곧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주인공이(우리가) 쌓아올린 위선적인 도덕과 진보성은 스퀘어 안에서만 안전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우아하게 말하는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선 밖의 세상은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해서 언제든 한순간에 위선을 벗기고 사회적 지위와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더럽고 위험하고 불안전한 것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감독은 그 선(線)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영리한 은유와 풍자로 가득한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경계를 지으며 살고 있다. 차상위계층, 기초수급자와 소득분위, 수능등급과 내신등급. 특별시와 직할시 그리고 읍면동. 이런 무수한 경계선들은 사람을 나누고 규정하고 정체성을 강요한다. 호의든 불의든 나의 스퀘어와 타인의 스퀘어가 중첩된다면, 혹은 나의 스퀘어 안에 누군가 시린 한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네모를 갖지 못했거나 너무 작아 한 발로도 도저히 서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공간에 있는 소수자들이 느끼는 네모 밖 세상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혹 그들이 좁은 스퀘어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갈등은 스퀘어의 경계선이 겹쳐질 때 발생한다. 스퀘어의 네 경계선은 사회적 합의인 상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스퀘어가 주어졌을 때 통용될 수 있다. 세상은 개인에게 스퀘어를 균등하게 제공하지 않는다.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닌 스퀘어를 넓히는 만큼 누군가는 좁아져야 하는 제로섬게임으로 인식하는 이상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인상적인 것은 금발의(그렇다. 검은 머리의 소수자가 아닌 금발이다) 가난한 어린 소녀가 “신뢰와 배려,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이야기하는 더 스퀘어 안에서 폭발로 터져죽는다는 전시회 홍보영상이다. 복잡하게 얽힌 사적인 일로 면밀하게 검토하지 못(안)한 주인공은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수석 큐레이터의 자리를 내놓게 된다. 감독은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의 영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어쩌면 금발의 소녀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그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고자 한 게 아닐까 싶다. 마치 딴청피우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처럼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는가. 각자가 가진 스퀘어와 타인의 스퀘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래서 내내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 처한 조건은 다 다르지만 누구나 연관을 맺고 있기에 서로의 스퀘어는 애당초 중첩된 것임을 인정한다면 정치적 올바름의 경계선도 필요 없게 되는 게 아닐까. 기본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은 불편하다. 기꺼이 불편해하는 만큼 손톱만큼씩 세상은 좋아지고 스퀘어의 네 경계선은 공유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강미숙(소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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