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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레터 Vol.10] 모닥불의 모순 <그녀들의 무임승차(This train I ride)> 상영담당자  |  2020.09.18  |  조회 19

모닥불의 모순
아르노빗시 <그녀들의 무임승차(This train I ride)>

삶의 대부분은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존엄을 갉아먹는 근무환경에서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를 유지시키는 것. 또는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행복하기 위해 섭취하는 음식들, 음주, 흡연. 스마트폰. 어쩌면 모순 그 자체가 나인지도 모른 채, 일상을 다시 구성하고, 마음을 다잡고, 나와의 약속을 수십 번 깨다 보면 어느새 일 년이라는 시간은 금세 가버린다.
요즘 내가 하는 인생 최대의 고민은 운전이다. 그냥 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 같지만 나에게 안전과 위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운전 미숙으로 발생할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손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할 심신미약 상태의 나를 생각하면 운전은 거의 핵무기수준의 해로움이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의 나는 그렇지 않다. 머릿속에서, 불쑥, 허름한 중고차를 몰고 원주시 외곽을 드라이브 하는 나를 상상한다. 작은 차, 큰 차, 뚱뚱한 차. 가릴 것 없이 이리저리 몰고 어디든지 가는 유리 멘탈의 나.

위험해지느냐, 아니면 안정을 추구하며 이 정도의 삶에 안주하느냐를 두고 선택하는 것은 평범한 고민이다. 그래서 운전도 그냥 ‘하면 된다’ 라는 모범적인 선택지가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나의 갈등의 원류를 그려냈다고 느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2주 전에 끝난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EDIF2020) 에서 상영된 아르노 빗시 감독의 ‘그녀들의 무임승차(This train I ride)’ 이다. 제목 그대로 미대륙을 횡단하는 화물열차에 무임승차하여 이곳저곳 떠도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화물열차를 타게 되었고, 공통점은 없지만 ‘무임승차’ 라는 단어가 뿜어내는 분위기처럼 규칙과 안전함에서 벗어난 불안이 그녀들의 에피소드마다 자리 한다.


레일로드 위의 용접공의 불빛을 보고 화물열차를 타게 된 여성은 늘 언제나 기차에 오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48시간 동안 멈추지 않는 기차 위에서 용접을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눈앞의 풍경을 그저 흐르는 채 둔다. 최소한의 짐을 갖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삶. 삶이 이렇게 그저 흐르는 채로 둘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떠도는 삶에도 불문율은 있다. 강렬한 용접 불꽃에 감응하여 ‘안전’을 과거의 일상에 묻어두고 떠난 삶에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규칙들이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규칙을 버린 삶에 규칙이 존재한다. 그가 말하는 불문율은 레일로드 위의 특수한 것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모습과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 ‘모든 규칙은 남성을 염두하고 있다. 같은 곳에서 잠들지 말 것. 믿지 말 것. 목적지가 어딘지 물어볼 것. 여자들과의 관계를 물어볼 것. 신체접촉을 못하게 할 것.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면 즉시 그곳을 떠날 것. 함께 자지 말 것. 바로 목소리를 높일 것.’

그가 용접에 감응되어 기차를 타게 된 원인은 어떤 것(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뛰어넘어보겠다는 영감이었다. 하지만 레일로드 위의 삶에서도 뛰어 넘어야 할, 피해야 할 무언가는 존재한다. 나는 이 지점이 ‘그녀들의 무임승차’가 도시와 시스템에서 벗어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시스템의 피해자, 자본주의 체제에서 낙오한 실패자들이 도피한 삶 속엔 한 끼를 위해 하루를 소진하고 불편함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서사가 존재한다. 이들의 삶에도 산짐승과 자연재해로부터 소중하게 일군 일상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겐 시스템에서 벗어났다는 다행감이 있다. 즉 타인의 존재에서 오는 불행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찾기 위해 ‘자연인’이 되어 오롯이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레일로드 위의 여성들은 자신의 안전이 약탈당할 가능성과 함께 밖을 떠돈다. 공동묘지에서 책을 읽고 주먹만한 모닥불에 의지해 잠을 청하는 삶. 그러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방치된 일상의 거듭 속에서 그는 어느샌가 그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강한 의지를 얻는다. 위험에 저항하며 강한 의지로 나를 믿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런 믿음에서 다시 얻게 되는 강한 의지. 안락한 하룻밤을 위해 모닥불을 피우지만 그 불빛에 타인의 눈에 띌 수도 있다는 모순을 감수하는 것. 그들의 삶을 보면서 보호받기를 ‘강요’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선택한 삶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밤을 지키는 모닥불이 위험을 유인하는 불빛과 동일 하다는 건 내가 애써 피해온 많은 위험이 나를 더 온건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장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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